
- 경영경제융합학부 교수 / RISE사업단 지역상생협업센터장 여민선 -
좋아하는 데에는 좀처럼 이유가 없다. 내 연구실 책장 한 칸에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언제부터, 왜 이 작가를 이토록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 소설들이 그냥 좋았다.
내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처음 만난 것은 중고등학교 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박완서라는 작가에게 거의 빠져 지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 책에 담긴 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 낯선 세계에 깊이 공감했다. 어쩌면 그 까닭 모를 끌림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마케팅에서 답을 찾고 싶었던 질문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써 보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이야기는 개성에서 멀지 않은 박적골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시작되어, 스무 살 무렵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과 맞닥뜨리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평화로운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자라던 어린 소녀가, 자식 교육에 온 정성을 쏟는 어머니를 따라 서울 '현저동'의 낯선 산동네로 이사하며 겪는 문화적 충격과 성장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소설이 아름다운 것은, 그 세계가 거대한 역사가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정성껏 고아 만든 깨강정, 동무 복순이를 따라 읽던 『소공녀』 한 권, 그리고 서울로 떠난 뒤 처음 다시 내려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고향의 봄.
“박적골의 봄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처음 알았다. 서울로 간 후 그 계절에 내려와 보는게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한 걸음 떨어져 본 후에야 고향의 봄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 역시 매일같이 마주하는 것들의 매력을,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쳐온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예전과 달리 『소공녀』 대목에서 시선이 오래 멈췄다. 1930년대 시골 마을의 어린 소녀가 머나먼 서양의 동화를 읽으며 마음을 빼앗기던 그 장면을, 수십 년 뒤 박적골을 가본 적 없는 내가 책으로 읽으며 똑같이 빠져들었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대와 장소를 건너 사람의 마음에 가닿는다. 가장 지역적이고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가장 보편적인 울림이 되는가—로컬 콘텐츠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표지 이미지
흔해서 몰랐던 것들이 눈부신 '콘텐츠'가 되기까지
무엇보다 이 책의 한가운데에는 싱아가 있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도 싱아가 정확히 어떤 풀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저 어렴풋이 그 새콤한 맛을 상상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물음은 언제나 내 마음을 건드렸다.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 속에만 남아 있던 이 사소한 풀은 박완서라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소설'로 탄생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에게 읽히며 한국 문학의 위대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싱아가 무엇인지 직접 보고 자라지 못한 세대마저 공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잘 만들어진 콘텐츠의 힘이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감수성과 기억력이 함께 왕성할 때 입력된 것들이 한 사람의 정신사에 미치는 영향이 그토록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마케팅을 공부하고 또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문장에 강하게 이끌렸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싱아의 새콤달콤함 같은 작고 구체적인 감각이다. 혀끝에 남은 맛, 골목의 냄새, 어느 계절의 빛 같은 사소한 단서가 오래 묻어둔 기억과 정서를 한꺼번에 불러낸다. 사람이 어떤 것에 애착을 느끼는 까닭은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감정이 포개어졌기 때문이고, 잊고 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 비로소 마음을 연다. 노스탤지어가 강력한 브랜드 자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대학에 있는 나의 역할을 돌아보게 했다. 감수성과 기억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무엇이 가슴에 입력되느냐가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면,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 울산은 과연 어떤 기억과 정서로 새겨지고 있을까. 졸업과 동시에 서둘러 떠나고 싶은 도시로 남을지, 먼 훗날 문득 그리워질 '싱아' 하나를 품은 곳이 될지는 지금 우리가 학생들과 무엇을 함께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다.
경영대학 앞에서 소개 책과 함께한 여민선 교수
울산의 '싱아'를 현대적으로 복원하는 일
흔하던 싱아 한 포기가 사라진 자리를 한 편의 소설이 메웠다. 누군가에겐 시시했을 그 풀이 글로 복원되어 수십 년째 사랑을 받으며 마침내 문학의 자산이 되었다. 나는 울산에도 바로 그런 일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우리 대학이 울산을 리브랜딩할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박완서 작가님이 평생 해온 작업의 울산 버전인지도 모른다. 울산의 이야기와 유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많던 것들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를 묻고 그 답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작업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울' 학생들이 발굴해내는 울산의 이야기들, 'U-Solve'를 통해 지역의 진짜 고민을 함께 풀어가는 학생들의 발걸음.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는 결국 '애정'이 ‘경험’과 함께한다. 어떤 도시에든 그곳 사람들만 아는 '싱아'가 있다. 누군가에겐 퇴근길에 올려다보던 공단의 불빛이, 누군가에겐 골목 어귀의 오래된 간판이 그것일 테다. 사라지면 비로소 아쉬워지는 그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어떤 브랜딩도 끝내 공허해질 것이다.
'울산 러버스', 반짝하고 사라지지 않으려면
박완서 작가님은 1992년 이 책의 서문에 "소설이 점점 단명해지다 못해 일회적인 소모품처럼 대접받는 시대건만…"이라는 안타까움을 남겼다. 30여 년 전의 그 한탄을, 나는 이 도시에 빗대어 다시 읽는다. 도시의 브랜딩 역시 곧잘 일회적인 소모품처럼 다뤄진다.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를 무분별하게 복사해 오는 일회성 트렌드 추종은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울산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즉 우리만의 '싱아'를 찾는 일이다. 회색빛 산업 도시라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지금의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좋아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울산의 10대, 20대가 일상 속에서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거주 만족도를 높여갈 때, 비로소 이 도시가 단단한 자생력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관광객을 만족시키기 이전에, 울산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먼저 이 도시를 좋아하고 울산을 이야기하는 '울산 러버스(Ulsan Lovers)'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오래 가는 브랜드는 새로 지어낸 슬로건이 아니라, 그 땅이 실제로 살아낸 기억에서 온다.
그리고 나도, 울산에서 나의 '싱아'를 찾는다
사실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다. 이 도시에 오기 전까지 나는 '지방소멸'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면서도 그 무게를 깊이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살며, 특히 대학에서 20대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 단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떠나본 후에야 고향의 봄을 알아본 작가와는 반대로, 나는 밖에서 흘러들어와 비로소 이 도시 곳곳에 숨은 싱아를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란다. 우리 학생들이, 이 도시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싱아를 찾아내기를. 그 사소하고 새콤한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울산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좋아하고 자랑하게 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나는 늘 입버릇처럼 이 세상에서 책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바쁠 때는 책 한 권에 손이 가기가 참 어렵다. 그러다 오랜만에 책장에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꺼내어 읽었으니, 이왕 시작한 김에 후속편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부터 다시 한 권 한 권 꺼내보며, 2026년의 이 뜨거운 여름을 사랑했던, 그리고 다시 사랑할 박완서 작가님과 함께 보내봐야겠다.
좋아하는 데에는 끝내 이유가 없다. 다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박적골의 유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싱아 한 포기가 어째서 나를 그토록 움직였는지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장 사적인 기억이 가장 깊은 공감이 되고, 그 공감이 시대를 건너 살아남는 것. 그것이 곧 좋은 이야기의 힘이고, 한 지역이 끝내 지켜내야 할 브랜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연락을 주는 우리 학교 학생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책 한 권을 건네야겠다. 사라진 싱아를 찾아보라고, 네가 발 딛고 선 이 울산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너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보라고. 네 가슴속에 깊이 각인될 그 사소하고 따뜻한 기억들이 모여, 끝내 우리 울산을 가장 매력 있게 만들 최고의 콘텐츠가 될 거라고 응원해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