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
U-CULTURE
[Easay] 달리며, 나를 다시 세우다
2026-03-09

달리며, 나를 다시 세우다

학사관리팀 김경배 차장의 마라톤 이야기


사람마다 마음이 지칠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음악을 듣고,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제게는 그 시간이 바로 ‘달리기’였습니다. 조금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묵묵히 발을 내딛는 동안 저는 비로소 제 안의 소음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다시, 운동화를 꺼내다

처음부터 마라톤을 목표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대에는 헬스, 수영,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면서, 운동은 자연스럽게 삶에서 멀어졌습니다.


40대에 들어서자 업무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긴장감, 운동 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점점 크게 느껴졌습니다. 늘어난 체중과 뱃살을 보며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운동이 좋을지 고민하던 끝에 떠오른 것이 러닝이었습니다. 별다른 장비 없이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집 바로 옆에 문수축구장이라는 좋은 러닝 코스가 있다는 점도 큰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2024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문수구장을 한 바퀴 도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무척 상쾌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통해 러닝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나름의 훈련 계획도 세워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변화는, 어느 순간부터 아내와 딸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러닝은 이제 제 개인의 취미를 넘어, 우리 가족이 함께 즐기는 소중한 가족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완주의 기쁨은 기록보다 오래 남습니다. 함께 나눈 땀과 웃음이 더욱 값진 추억이 됩니다.


첫 완주의 기억

러닝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참가한 대회들도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처음 참가했던 대회는 2024년 경주동아마라톤 하프코스였습니다. 보통은 10km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조금 욕심을 내어 하프코스에 도전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동안 대회 참가를 위해 열심히 훈련했고, 처음 출발선 앞에 섰던 날의 설렘과 긴장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첫 완주의 기록은 1시간 39분대였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순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기록일 수 있지만, 제게는 분명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기록 너머의 순간들

이후 2025년 대구마라톤 첫 풀코스에서는 3시간 27분, 2025년 경주국제마라톤 풀코스에서는 3시간 15분, 양산마라톤 하프코스에서는 1시간 25분대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대회는 최근 완주한 2026년 대구마라톤입니다.


이 대회는 아내의 첫 풀코스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2월임에도 20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 후반부의 쉽지 않은 언덕 코스까지 결코 만만한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한 번도 걷지 않고, 동반주로 함께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그 순간을 혼자 견딘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숫자로는 몇 줄 되지 않는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낸 시간, 그리고 끝내 해냈다는 조용한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추억으로 쌓아갔다는 사실이 제게는 더욱 깊게 남아 있습니다.


2026서울마라톤(좌), 2025경주국제마라톤(우) 풀코스 완주후 기념사진.


버티는 힘을 배우다

마라톤을 하며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성취’ 그 자체보다 ‘견디는 힘’이었습니다. 긴 거리를 달리다 보면 반드시 한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돌처럼 무거워지며,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고비를 조금만 더 지나면 다시 호흡이 돌아오고, 다시 발걸음이 살아납니다.


저는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무너질 것 같던 내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이 버겁고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아주 조금만 더 버텨내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깁니다. 마라톤은 제게 그렇게 삶의 리듬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일상을 비우는 루틴

학사관리팀의 업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사 일정이 겹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면 마음이 쉽게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날이면 스트레스가 쌓였고, 퇴근 후에도 마음이 좀처럼 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뒤로는 달라졌습니다. 답답한 날일수록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밖으로 나섭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머릿속이 차츰 정리됩니다.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지 보이고, 감정이 아니라 균형감 있게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달리기는 제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지친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생산적인 나로 돌아오게 하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몸이 건강해진 것만큼이나 마음도 한층 단단해졌습니다.


천천히, 오래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달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은 서툴고, 누구나 첫 몇 걸음은 힘겹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마음입니다. 비싼 장비도, 거창한 목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편한 운동화 한 켤레와, 오늘 하루 1시간만 나를 위해 내어보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걷고, 조금 뛰고, 다시 숨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몸이 달리기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달리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달릴 때 기록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계절의 냄새를 맡고, 새벽 공기의 차가움을 느끼고,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빛을 바라보며 달립니다. 비 온 뒤 촉촉한 길 위를 지날 때도, 해 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 아래를 뛸 때도, 저는 그 시간 속에서 조용히 위로받습니다. 달리기는 저를 더 빠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기보다,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음 결승선을 향해

앞으로도 저는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올해 상반기 풀코스 마라톤 기록을 3시간 10분 이내로 줄여보는 것이 목표이고, 언젠가는 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록보다 더 중요한 바람이 있다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달리는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지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 흔들리더라도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달리기는 제게 늘 말해줍니다. 삶은 누군가보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호흡으로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오늘도 저는 조용히 운동화 끈을 묶습니다. 그리고 다시 달립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