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
U-NOW
[이 한 권의 책] 살아가는 일, 마음이 숨 쉬는 시간
2024-10-28

살아가는 일, 마음이 숨쉬는 시간

- 국어국문학 노경희 교수 -


Q.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국어국문학부에서 우리나라 고전문학과 동아시아 비교문학ㆍ문학 교류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교수 노경희입니다. 국어문화원 원장직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저는 책과 문자ㆍ언어 및 번역에 관심이 많고, 서적들의 형태와 물질적 요소, 한자와 자국어 번역, 출판문화 등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훈민정음(한글)으로 번역된 불경이나 천주교 교리서 등의 종교서 출판이 지니는 사회문화사적 의미를 살피는 일까지 관심을 넓히고 있습니다.  


Q. '독서'란 나에게 '무엇'인가요?

A. 쉽지 않은 질문인데요.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고단한 날에도 한 문단이라도 읽고 잠들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바로 공감되었어요. 저에게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삶에서 너무나 당연히 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마음이 숨을 쉽니다. 그래서 ‘독서’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살아가는 일, 마음이 숨 쉬는 시간”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Q. 교수님께서 한중 문학교류와 고전 한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우리나라에서 국어국문학(고전문학)을 공부했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중어중문학과에서 한중 비교문학과 문헌학을 공부했습니다. 국문학 전공자로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배움의 여정인데요. 처음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갈 때만 해도 일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과 우리는 많은 것들이 역사적으로 얽혀 있는데, 그때까지 제가 일본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전통 시대에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서로 배워가는 가운데 창조하는 독자성이라고 할까요. 고전문학 연구는 그러한 삼국 문화의 원형과 그 관계의 역사를 살핀다는 점에서 저에게 무척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Q. 교수님께서 현재 주로 연구하시거나 집필하고 계신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17세기 전반 격동의 시기를 살아갔던,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의 편지글을 번역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소설  『홍길동전』과 영화 <광해> 덕분으로 허균에 대해 혁명가ㆍ이단아ㆍ개혁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데요. 그의 편지글을 보면 우리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이 너무나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는 두려움과 불안을 보이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너무나 슬퍼합니다. 무엇보다 최고의 가문 출신이면서도 서얼이나 기녀, 승려 등 신분이 낮은 이들과도 허물없는 벗으로 다정한 글들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그의 따뜻한 심성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허균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책입니다. 


  다음으로는 제가 오랜 기간 가장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조선의 서책과 인쇄출판에 대한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책의 내용이 아닌, 종이ㆍ먹ㆍ인쇄기술ㆍ제본ㆍ판형ㆍ표지 등에 집중하여 그러한 물질적 형태를 만들어 낸 시간과 공간을 살피는 작업입니다. 책의 물질적 요소를 매개로 하여 전통 시대 사회문화의 구조와 변화의 구체적인 사항들을 살피는 책이 될 것입니다. 



Q. 2023년도에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국어국문학부 성범중, 안순태 교수님과 함께 쓰신 ‘알고보면 반할 꽃시(태학사)’가 세종도서 교양부문(문학) 추천도서로 선정이 되었는데요, 이책의 집필 의도와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좀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은 계절마다 피는 우리꽃 52종류를 뽑아 꽃들을 읊은 한시(漢詩)를 번역하고, 그 해설과 감상, 그림과 이야기를 더한 책입니다. 국어국문학부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성범중, 안순태 교수님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자라 꽃이나 나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는데 울산에 온 이래 성범중 선생님으로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 이야기들을 무척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학교 안 구석구석에 피어 있는 꽃들에 대해 늘 오늘은 어디에 무슨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지금도 매년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그곳에 꽃을 보러 찾아가곤 합니다. 그 기억에서 성범중 선생님이 퇴임하실 때 앞으로의 인생에 꽃길만 펼쳐지라는 소망을 담아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책을 쓰는 동안 동백이 필 무렵부터 국화꽃이 질 때까지 저자들이 매주 모여 그때 피는 꽃과 시들을 함께 읽고 감상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사철제본(실제본)’이라는 특별한 기술로 책 안의 꽃그림이 활짝 펼쳐지고, 좋은 종이에 그림의 색감이 원본 이상으로 잘 표현된, 그야말로 ‘꽃다발’ 같이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출판되고 일주일 만에 재판을 찍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도 기사로 소개해 주고, 높은 경쟁률을 보인 2023년도 세종도서 교양부문(문학)에 선정되어 저희에게는 너무나 선물 같은 책입니다. 현재 영어 번역본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꽃과 시, 그림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대학 웹진 <이 한권의 책> 섹션은  교수님께서 크게 영향을 받으셨거나, 타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는 코너입니다. 교수님의 인생 도서 3권 정도를 추천 사유와 함께 소개부탁드립니다.

A. 제가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꼭 추천하는 책이 있는데요, 바로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의 역사서로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가 있지만, 이 책은 국가 차원에서 편찬된 정사(正史)다 보니 신이하거나 허무맹랑하다 싶은 이야기들은 다 빠졌습니다. 일연은 그러한 점에 불만을 품어 제목 그대로 삼국사기에서 빠진 ‘남은 일들(遺事)’을 모아 삼국유사를 엮었고, 덕분에 오늘날까지 우리 고대의 신화와 전설들이 전하게 되었습니다.  


  『삼국유사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막상 실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인데요, 의외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단군, 고구려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연오랑과 세오녀, 가야 이야기, 처용, 김유신 설화 등 전래동화나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서 소재가 자주 차용되어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신라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이 경주는 물론 그 주변인 울산에도 많습니다. ‘처용’ 이야기가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삼국유사는 누구보다 경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필독서입니다. 책을 읽고 하나하나 그 장소들을 직접 탐사한다면, 책을 넘어 그 공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읻다’ 출판사의 「상응」이라는 서한집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는 ‘서한을 주고받으며 뻗어나가는 사유의 여정들을 비춘다’라고 하는데요, 역사 속의 특별한 인물들의 사적인 편지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이제까지 모두 6권이 나왔는데, 나쓰메 소세키ㆍ다자이 오사무ㆍ랭보ㆍ예카테리나 여제ㆍ횔덜린ㆍ야콥슨-레비스트로스의 서한집들입니다. 일본과 프랑스의 유명한 문인들, 러시아의 여제, 18세기의 독일 시인, 20세기 언어학자와 인류학자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이들의 내면 세계와 그 시대의 풍경을 함께 살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지금 준비하는 조선시대 허균의 서한집이 곧 이 시리즈에서 우리나라 작가 중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학교 도서관에도 전부 갖춰져 있으니 이 가을, 편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문인들의 지적 교류의 현장을 꼭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 


Q. 대학 웹진 <이 한 권의 책> 섹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A. 처음 이 코너를 제안 받을 때만 하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책을 너무나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그 사이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 수상국이 되었고(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전국민이 독서 열풍에 빠졌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면서 갑자기 문화 강국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일을 계기로 모두들 더욱 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한 권의 책>에 등장하는 책들은 학교 도서관에 들러서라도 꼭 찾아 읽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의 책에 대한 많은 생각을 듣고 싶고, 추천해주시는 좋은 책들을 많이 알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